강상우 님은 디자인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며,
나만의-성 임팩트랩 프로그램 참가자에서 시작해 운영진으로 약 1년간 함께했습니다.
컴퓨터 밖 세상
저는 디자인을 배우는 대학생이에요. 디자이너는 많은 정보를 모으는 작업이 필요한데 학교에서 컴퓨터 속 세상만 바라보니까 답답했어요. 직접 사람들을 만나 정보를 얻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의성에서 ‘로컬러닝랩’ 프로그램이 열린 거예요. 로컬러닝랩 1기에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임팩트랩’에 속해 있었는데요. ‘노인’을 주제로 활동하면서 의성의 ‘낙상사고’에 주목했고, 열심히 정리한 자료로 군 관계자들을 설득했지만 시원하게 마무리 짓지 못하고 프로젝트가 끝났죠. 하지만 의성에 남은 팀장님이 꾸준히 활동하면서 군의원과 연결이 되었고, 낙상사고 예산이 새롭게 확보됐어요. 내년에는 어르신들이 조금 더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길 기대하고 있어요.
끝과 동시에 시작을 결심한 날
22년 8월 21일이 제 로컬기념일이에요. 7주간의 프로그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의성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날이에요. 어르신들이 낙상사고에 관한 슬프고 아픈 이야기를 어렵게 꺼내주셨는데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쓰였어요. 문제를 잘 정리했고 군에 전달도 했지만 아쉬운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죠. 돌아가는 길 차 안에서 아버지에게 의성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그게 티가 났나 봐요. “아쉬우면 한 번 더 해 봐.”라는 아버지의 한 마디에 차를 돌렸죠. 1기 활동을 했던 마을의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2기 프로그램이 열린다는 소식에 다시 합류하게 됐습니다.
세상에 하나뿐인 유채유
마을에 공동으로 일구는 밭이 있었어요. 어르신들이 농사를 짓기에는 힘이 부치시니 잡초만 무성해졌죠. 그럴 바에는 꽃 구경이나 하자며 꽃씨를 뿌렸고, 그렇게 유채꽃밭이 됐어요. 봄날에 꽃 구경을 실컷 하고 유채 씨를 수확했는데 그 양이 1톤이나 됐어요. 어르신들과 마을 내에서 소비하고도 남으니 우리가 예쁘게 만들어서 온라인으로 팔아보자고 했죠. 하지만 세상에 나오지 못했어요.(웃음) 서류를 준비하던 중에 품종에 대한 정보가 미흡했고, 보완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지체됐거든요. 의성에서의 7주와 비용을 들여서 만든 유채유는 이제 세상에 하나뿐인 저의 애장품이 됐어요. 실제로 먹어도 되는 제품이긴 합니다만 먹진 못할 것 같아요.(눈물)
끝나고 남으세요
2기까지 연달아 참가하게 되면서 의성을 알고 어느 정도의 네트워크를 갖춘 참가자가 됐죠. 숙소에서 함께 지내면서 운영진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 지가 눈에 많이 보였어요. 도울 수 있는 것들은 돕다 보니까 대표님이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복학 전까지 더 있어보라는 말씀에 2기가 끝나고도 남게 됐어요. 제가 인복이 좋은 건지 의성분들이 다 좋은 사람들인 건지. 회사에서 참가자 숙소 공간을 내어주셨고, ‘우리 밥 먹을 때 밥그릇 하나 더 놓는 거니까 그냥 와서 먹어.’라며 챙겨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큰 걱정 없이 남을 수 있었어요. 프로그램 공고를 보고 ‘재밌겠다. 방학 되게 알차게 쓸 수 있겠다.’라는 생각으로 왔는데 1년째 있네요.(웃음)
시골은 다 그래
로컬에서의 일은 사람을 만나야 해결된다는 걸 느껴요. 이제는 어떤 일에 누가 얽혀 있을 거라는 감이 생겼고, 인터넷보다 직접 사람을 만나서 해결하는 절차가 빠르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희 프로젝트를 자기 일처럼 여겨 주시는 조력자들도 생겼어요. 대부분의 시골이나 로컬이 그렇듯 의성이 가진 어려움도 있어요. 도시는 아무래도 겪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문제도 쉽게 드러나는 편이죠. 그런데 여기는 ‘시골이 다 그렇지 뭐. 나이 들면 다 그래.’ 같은 생각들이 만연해요. 저희나 젊은 사람들이 관심 있게 바라봐 주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어요. 아직까지 제 역량이 부족해 문제점을 찾아보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부터 하나씩 해보려고 해요.
같이 할래?
프로젝트 주간에는 정말 밤낮없이 일에 몰입하며 지내요. 와중에도 주말이나 밤에 여러 모임을 했어요. 아무래도 주거공간에서 모여서 지내다 보니까 “나 이거 할 건데 너도 할래?” 하면서 자연스럽게 커뮤니티가 만들어져요. 요가, 러닝, 풋살, 요리, 독서, 영화, 그림, 별 보기, 계곡 가기, 텃밭 가꾸기까지 다양하죠. 제가 참가자일 때 추억을 하나 들려드리자면, 의성에는 눈이 잘 안 와요. 의성 학생들은 이글루 만드는 재미를 모른다는 이야기에 300개의 반찬통에 물을 얼려서 이글루를 만들어 보여주려고 했었죠. 같은 사람만 6개월 넘게 보다 보니까 조금 질려서(웃음) 주거공간 빈방에 외지 친구들을 데려와서 바비큐 파티를 하면서 술을 마시기도 했어요.
의성의 낮과 밤
시골은 낮과 밤 풍경이 많이 달라요. 가장 행복했던 낮의 기억은 마을에서 열린 면 체육대회에 참가했을 때였어요. 초무침 반찬과 밥을 한껏 먹으면서 경기에 나가고 응원도 했어요. 어르신들이 노래를 부르면 무대에 우르르 올라가서 춤도 췄죠. 반대로 의성의 밤은 고요하고 맥주를 마실만한 곳도 마땅치 않아요. 그래서 월드컵 때 회사의 끝 공간에 빔프로젝터를 쏴서 다 같이 첫 경기를 봤어요. 이런 전례가 없어서인지 주변 분들이 치킨, 맥주, 소시지도 후원해 주셨어요. 즐겁게 먹고 난 다음날 군청에 민원이 들어왔다는 거예요. 너무 시끄럽게 놀았나 후회했는데 그 내용이 “다음 경기도 하나요?”였어요.(웃음) 정말 뿌듯하게 다음 경기를 준비했던 기억이 나네요.
떠날 준비
저에게 의성은 떠난 사람들이 묻어있는 곳이기도 해요. 마을에서 관계를 맺었던 어르신들이 편찮으시거나 돌아가시면서 의성을 떠나고, 프로그램을 함께했던 친구들이 학교나 직장을 위해 떠나기도 해요. 행복했던 추억이 있는 공간들을 보면 아련해져요. 가장 많이 의지하고 어쩔 땐 밉기도 한 식구 같은 나만의-성 운영진, 참가자들, 챙겨주신 모든 분들이 저를 의성에 살게 했어요. 저도 더 남아있고 싶지만 학교 졸업을 위해 곧 가게 될 것 같아요. 의성에서 함께 손발을 맞췄던 사람들이 “그때 재미있었잖아. 우리 한 번 다시 해보자.” 제안을 주거나 누가 깃발을 먼저 확 흔들어준다면 저도 주저 없이 돌아올 것 같아요.
로컬기념일|<로컬라이프클럽 begins> 캠페인의 일환으로 마을 청년들이 우연과 인연을 계기로 로컬을 보금자리로 정하고 새로운 시작을 결심한 날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행정안전부 청년마을만들기 지원사업 선정 마을에서 추천한 인물의 인터뷰가 담겨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