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윤호 님은 태백 광광스토리지의 분위기 메이커로 활동하며
눈앞에 놓인 다양한 문제를 맞이하고 내 안에서 해결책을 찾는 교육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뜻밖의 황윤호
1년 전쯤 태백에 온 건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서였어요. 서울에서 소셜다이닝 모임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로 더이상 할 수 없게 되었거든요. 저에게 온전히 집중할 시간이 필요해서 사람들과 교류를 줄이고 싶었는데, 한 달의 시간을 보내면서 사람들과 소통할 때 더 많은 기회를 발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이전에는 전혀 하지 않았던 의류 작업을 태백에서 만난 상아님과 함께 하면서 깨달은 점이죠. 또 다른 발견은 제가 ‘교육 관련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었어요. 광광스토리지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지금까지 한 활동을 정리했는데, 소셜다이닝 다음으로 교육 관련 경험이 많았더라고요. 그 후부터 태백에서 제 역량을 살릴 수 있는 교육 프로젝트를 계속 시도해보고 있어요.
답을 찾는 과정
광광스토리지 신애 대표님은 저에게 용기가 없거나 포기하고 싶은 일 앞에서 어떻게 하면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길을 만들어주신 분이에요. 태백에서 교육 관련 활동을 시작하면서 협동조합을 꾸릴 때 필요한 교육을 만들기도 하고, 같은 방향성을 가진 사람들을 찾기 위해 독서모임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어요. 답을 찾는 과정을 배우는 것과 답만 알려주는 건 다르잖아요. 이런 과정을 밟아가면서 커리어도 쌓고, 성장해나가는 데 필요한 원동력도 만들고 있어요. 어떤 답이든 뚝 하고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끊임없이 답을 찾아야 하는 상황을 마주해야 하고, 계속해서 선택을 해야 하죠.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선택을 해야 최대한 후회가 덜 남는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어요.
나에게 맞는 온도
태백은 여러모로 저와 온도가 잘 맞는 도시예요. 고도가 높고 산에 둘러싸여 있어서 기온이 다른 지역보다 낮아요. 여름에는 에어컨 없이도 종종 이불을 덮고 자요. 태백이 아니면 겪어보기 힘든 시원한 여름을 보냈죠. 너무 행복해요. 태백의 엄청난 장점입니다. 이런 점이 때로는 단절감을 주기도 해요. 어디서 와도 보통 3-4시간이 걸리는 먼 도시고 오는 길에 터널도 많이 통과해야 하죠. 원래 있던 곳에서 벗어난다는 느낌을 줘요. 해외여행을 가는 이유와 비슷해요. 낯선 곳에 떨어지며 오는 자유로움과 해방감. 제가 여기서 똑같은 감정을 느꼈어요. 태백은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단절시키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느끼게 해요. 단절은 보통 부정적인 의미이지만 나의 새로운 면을 찾게 해 주는 긍정적인 의미의 단절로 표현하고 싶어요.
나만의 공간이 생긴 날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한 날이 제 로컬기념일이에요. 태백에 계속 살아보겠다는 결정이기도 하죠. 4월에 이사를 하기로 했는데 5월 15일에 이사를 했어요. 원래 머물던 무브노드(광광스토리지의 코워킹 스페이스) 숙소가 익숙해서 낯선 곳으로 떠나기까지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어요. 원래 머물던 곳은 편의점이나 식당이 손에 꼽히게 있어서 선택을 할 필요가 없었는데, 시내로 이사를 하니 처음엔 복잡하다고 느꼈어요. 서울 사람이었는데 태백 시내가 복잡하다 하니 다들 웃으시더라고요. 이사를 하고 나니까 내가 사는 공간이 있다는 게 특별하게 다가왔어요. 그동안은 ‘못하겠다’ 생각하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어졌네요.(웃음)
환영합니다
작년에 기회를 주셔서 청년마을을 잠깐 돕게 됐는데 재미있었어요. 참가자들처럼 태백에 들어와서 살고 있으니 이런저런 건의를 많이 할 수 있었고, 운영진분들이 제가 가진 함께 있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기질을 계속해서 살릴 수 있도록 북돋아주셨어요. 이듬해에도 함께하면 어떻냐는 제안을 주셔서 지금까지도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태백 광광스토리지에서 처음 온 청년들을 맞이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맡고 있어요. 청년마을에 합류하게 되면서 일단 월급이 나오고(웃음) 마을 분들의 도움으로 집을 조금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어요. 태백에 더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게 되었죠.
겉바속촉 태백
태백은 반전이 있는 도시예요. 석탄 광부와 광산 도시의 이미지가 강한 태백은 광산이 쇠락하면서 정적인 도시로 비춰지는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다이나믹한 면이 있어요. 다양한 사람들이 멈춰버린 심장을 다시 뛰게 하려 노력하는 느낌이에요. 알면 알수록 에너지가 넘치는 도시죠. 생동감을 가득 가진, 무언가를 해보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청년마을도 마찬가지고요. 지역을 위해 노력한다며 많은 응원을 받고 있어요.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활동가 님이 계신데, 자신은 지하 탄광에서 일을 했는데 자손들은 지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생기고 있어서 너무 좋다고 표현해주셨어요. 되게 기쁘셨대요. 그 말이 잊히지 않네요.
이젠 애틋해져버린
마을에서 청년들을 많이 생각해 주신다는 걸 느껴요. 앞집에 집주인분이 살고 계신데, 어느 날 지나가시면서 이렇게 툭 화분을 놓고 가시더니 고추 몇 개 심어놨으니 알아서 따먹으라고 하셨어요. 또 다른 날은, 마을 어르신들이 오셔서 고생한다고 응원해 주시면서 커피를 사주시고 가셨어요. 그런 관심들이 굉장히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애정이 없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마을에서는 정말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시고, 어디 가면 뭐라도 하나 더 챙겨주려고 하세요. 응원을 보내주시니 저희도 일부러 자리를 마련하려고 노력해요. 더 잘해서 마을에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요. 서로 애틋한 관계가 되어가고 있어요.
함께라서 다행이야
1년째 동료인 상아 님과 같이 살고 있어요. 오늘 하루 괜찮았는지, 힘든 점은 없는지 물어봐주는 게 지칠 때 힘이 많이 돼요. 태백에 오기 전에는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경쟁자로 생각하고 만나서 얘기할 새가 거의 없었는데, 여기는 동료이자 동네 친구가 생긴 느낌이에요. 동료들은 기회를 함께 유지하게 해주는 사람들이라면 신애 대표님은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을 주시는 분이에요. 함께하고 있는 분들께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로컬기념일|<로컬라이프클럽 begins> 캠페인의 일환으로 마을 청년들이 우연과 인연을 계기로 로컬을 보금자리로 정하고 새로운 시작을 결심한 날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행정안전부 청년마을만들기 지원사업 선정 마을에서 추천한 인물의 인터뷰가 담겨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