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원 님은 청년마을 술익는마을을 통해 군산에 정착하여
지역의 다양한 문화를 알리는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군산에 흘러들다
처음 오게 된 건 청년마을 ‘술익는마을’ 프로그램을 통해서였어요. 에디터가 되기 위해 글을 쓸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다가, 우연히 ‘글로 술 쓰다’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됐죠. 글도 좋아하고 술도 좋아하는데, 심지어 '술익는마을'이라니! 저를 위한 프로그램 같았어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2주 동안 마을에서는 술 마시기 좋은 공간을 알려주고, 글을 쓰면서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그렇게 제가 경험한 ‘군산’이라는 도시에 영감을 받아 술에 관한 글을 완성했어요. 2주가 끝난 뒤에 술익는마을 운영진으로부터 우리가 쓴 글을 책으로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글을 쓰다 보니 마을에 애정이 생겨서 기꺼이 편집장을 맡았고, 책을 만들었는데 전시까지 하게 됐네요.
술이 좋은 이유
술을 취하려고 마시는 분도 많지만, 저는 대화의 소재로서 술을 좋아해요. 술은 포춘쿠키 같아요. 쿠키를 먹으러 식당에 가지는 않지만 음식을 먹고 난 뒤 나온 포춘쿠키 속 글을 보면서 웃고 이야기하고, 그러다 친해지기도 하잖아요. 술도 그래요. 술을 매개로 만나서 맛과 향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서로가 가진 이야기를 나누고 더 많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돼요. 실제로 군산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시인, 소설가, 블로거 등 글 쓰는 사람은 물론이고 광고 전공생, 마케터 등 주류 브랜딩이 가능한 다양한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도 만났어요. 저는 생물학을 전공해서 평소에 글 쓰는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적었는데, 술익는마을 덕분에 좋은 기회를 만난 거죠.
돌아간다는 감각
돌아간다. 한 번도 그런 기분은 느껴본 적이 없었어요. 평소 집으로 돌아갈 땐 ‘끌려왔네. 다시 와버렸네’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군산은 달랐어요. '술로 글 쓰다'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책을 만들고 전시가 끝날 때까지 5개월 정도를 군산에서 살았어요. 서울에서 글을 배울 기회가 생기면서 이곳을 떠났지만 가장 나다울 수 있고 편안하게 존재할 수 있는 곳은 군산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시 내려가기로 했죠. 드디어 내가 있어야 하는 곳에 돌아가는 기분이었어요.
군산에 남다
TMI*이긴 하지만 통장잔고가 떨어져서 군산을 떠나야 했어요. 날짜까지 정해놓고, 인사를 드리러 자주 가던 바에 갔다가 우연히 제 사정을 이야기하게 되었어요. 그때 바텐더님께서 "네가 가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라 다른 이유로 떠나는 거라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손을 내밀어주셨어요. 떠날 날짜가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주민분들에게 감사한 제안을 너무나도 많이 받았고, 그때 ‘이곳에는 나를 지지해 줄 사람이 있구나’, ‘상황이 힘들어도 군산에 머물러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타이밍 좋게 아르바이트 자리도 생겼어요. 돌아갈 이유가 없어졌죠. 부모님께 전화 해서 여기에 남아 콘텐츠를 더 만들어보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날이 2023년 4월 6일, 군산에 더 머무르기로 결정한 로컬기념일이에요.
*TMI : too much information의 준말.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뜻함.
낯섦이 낯설지 않도록
술익는마을 운영진과 지역주민분들께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많이 받아 이주할 수 있었어요. 아는 사람 없이 혼자서는 낯선 지역에 뿌리내리기 쉽지 않았을 거예요. 집을 구하는 것도,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니까요. 특히 저처럼 글을 쓰는 사람은 브랜딩이 되어 있지 않으면 일을 구하기가 어려운데, 주민분들은 저를 믿고 글을 쓸 수 있는 곳을 알아봐 주셨어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글 쓸 공간을 내어주시고, 방도 저렴하게 살 수 있게 해주셨어요. 이제는 아르바이트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군산에 대한 글도 열심히 쓰고 있어요.
자유롭고 여유로운 일상
이곳에 있으면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싶은 시간에 원하는 곳에서 쓸 수 있어요. 군산에 오기 전에는 전국을 떠돌아다니면서 늘 일에 치여 살았어요. 이제는 11시쯤 느지막이 일어나 이성당에 가요. 관광객들에게는 대단한 빵집이지만 저에게는 동네 빵집이죠. (웃음) 빵을 들고 째보선창에 가서 갈매기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노래를 들어요. 그러다 글감이 떠오르면 자전거를 타고 카페에 가서 작업을 하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어요. 자유롭고 여유롭죠.
나의 자리를 찾다
군산은 정말 많은 콘텐츠가 모여 있는 곳이에요. 작은 동네 안에 한국, 일본, 중국, 미국···. 다양한 문화권의 문화들이 조금씩 얽혀있어서 너무나 많은 콘텐츠와 이야기가 존재해요. 하지만 사람들은 ‘군산’ 하면 베이커리와 짬뽕만 이야기해요. 그게 너무 아쉬웠어요. 저는 글을 쓰는 에디터니까 사람들이 이곳의 다양한 면을 볼 수 있도록 군산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풀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은 군산과 술의 직접적인 연관성에 대해 연구하고 그것을 주제로 한 에세이를 쓰고 있어요. 왜 술을 마시기 좋은 곳인지, 술과 연관된 이야기가 많은 이유는 무엇인지, 왜 술익는마을이 있는지 알리고 싶어요. 그게 제가 군산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라 생각해요. 제 자리를 잘 찾아온 것 같아요.
우리 마을을 소개합니다
여기는 각자로 존재하면서 함께할 수 있는 동네예요. 저는 누구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았는데 길을 걸어가다 보면 동네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고 인사를 하세요. 그럼 저도 인사를 건네고, 걷다가 자연스럽게 옆자리 앉아 술을 마시게 돼요. 이런 순간들이 계속되다 보니 동네가 하나의 커다란 바(bar)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이 마을에는 울적하면 떠오르는 곳, 책 읽기 좋은 곳부터 마시고 싶은 주종의 다양한 술집들까지 500걸음 안에 있어요. 이렇게 술 마시기 좋고 여유가 있는 군산이 좋아요.
로컬기념일|<로컬라이프클럽 begins> 캠페인의 일환으로 마을 청년들이 우연과 인연을 계기로 로컬을 보금자리로 정하고 새로운 시작을 결심한 날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행정안전부 청년마을만들기 지원사업 선정 마을에서 추천한 인물의 인터뷰가 담겨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