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설악문우회 회장 김종헌 님은 청년문화를 통해 속초에
새로운 관광트렌드가 생기길 기대하며 청년마을 ‘라이프밸리’와 지역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속초의 속살
30대 초반부터 40년간 속초에서 교사로 근무하다 교육장을 역임하고, 지금은 퇴임 후 문화예술인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인근 도시 양양에서 태어났지만 속초로 중학교를 다녔어요. 매일 아침 저녁 9km를 걸어 다니면서 속초의 여러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었죠. 속초는 ‘비빔밥’ 같은 도시예요. 비빔밥 속 재료처럼 다양한 사람들과 산, 호수, 강, 바다라는 천혜의 자연경관이 어우러져 있어요. 그런 속초가 외지인들에게 닭강정, 물회로 먼저 인식되는 게 개인적으로 많이 아쉬워요. 하지만 아직 드러나지 않은 매력이 많으니 가능성이 열려 있죠. 정해진 매뉴얼 따라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철 따라 그때그때 재료와 맛이 달라지는 속초가 됐으면 좋겠어요. 청년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나의 마지막 역할
속초는 자연이 주요 자원이기 때문에 산업자원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청년들이 속초에 있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 어려워요.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관광산업과 문화사업이 합쳐진 새로운 관광트렌드가 필요하고, 우선 청년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교직생활을 할 때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면 중재하고 해결해 줄 어른이 없었어요. 속초는 일제강점기 역사와 활발한 수산업으로 이주민 비율이 더 높다는 게 이유죠. 기댈 사람이 없다는 점이 살아가면서 참 아쉬웠어요. 이제는 제가 여러 활동을 하면서 속초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청년들이 제가 겪었던 어려움을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돕고 있습니다. 실제로 라이프밸리 발대식에 지역 원로들을 모아 참석하기도 했죠. 속초에 온 청년들이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도록 살피는 것, 지역과 청년을 연결하는 것이 제 마지막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라이프밸리와의 인연
우연히 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사무실에서 소호259(라이프밸리 거점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들어보니 속초에서 핼러윈 축제를 연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좋다는 생각보다 걱정이 앞섰어요. 지역에서 문화예술 활동한다고 들어온 청년들 대부분이 2, 3년을 못 버티고 속초를 떠나곤 했으니까요. 그러다 며칠 뒤에 행사에 갔는데, 청년들끼리 모여 정말 재밌게 노는 거예요. 그 뒤로도 쭉 지켜봤는데, 청년들만이 할 수 있는 활동이고 행사마다 아이디어가 너무 참신했어요. 제가 이승아 대표에게 먼저 다가가서 명함을 줬죠. 속초에 오래 살아 아는 사람이 많으니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 이야기하라고. 그 때 인연이 되어 지금은 라이프밸리를 통해 속초에 온 청년들이 지역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함께하고 있어요.
함께 만든 청년마을
어느 날 이승아 대표의 전화를 받았어요. 의논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해서 만났는데, 그때 '청년마을 만들기'라는 사업에 대해 듣게 되었어요. 공모 기간이 얼마 안 남아서 이 대표가 망설이는 상황이었는데, 잘 안 되더라도 한 번 해보자고 했어요.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할 때 당장의 결과로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안 되면 더 보강하고 그래서 더 나은 계획으로 도전하고 그런 것들이 쌓이면 결국 좋은 아이템이 되지 않겠느냐. 도전한 것 자체가 라이프밸리에 좋은 밑거름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겁내지 말고 한 번 해보자고 했죠. 그 말을 듣고 이 대표가 지원하기로 결정했고, 결국 청년마을에 선정이 됐죠.
숫자 너머의 문화
청년들의 활동을 보고 문화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어요. 지역의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할 일이 많은데, 그럴 때마다 가장 힘들었던 게 관객을 동원하는 일이에요. 관객의 수가 행사의 결과가 되곤 하니까요. 그런데 라이프밸리는 달랐어요. 30명 정도로 규모는 작은데 엄청 신나게 놀더라고요. 그걸 보고 이제는 문화의 흐름이 바뀌어야 할 때라고 느꼈어요. 숫자에 연연하기 보다 정말 즐길 수 있는, 그래서 다음엔 친구를 데리고 오고 싶은, 점점 커질 수 있는 문화행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저뿐만이 아니라 속초 문화계 전반이 라이프밸리의 영향을 받아서 조금씩 바뀌고 있어요. 청년들을 만나 진정한 문화예술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작은 변화를 시작으로 앞으로의 속초 문화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요.
지역과 청년의 징검다리 되다
지역에는 저처럼 청년들을 무한한 잠재성을 가진 존재로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리잡게 도와줘도 돌려주는 게 없다’는 시선도 있어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청년들이 여기 투자한 금액도 있을 것이고, 직원들도 건사해야 할 테고. 자리잡기까지 길게는 10년을 봐야 하는데, 벌써 지역에 무언가를 환원하길 바라는 것은 우리 욕심이다. 조금 더 지켜보자고요. 그리고 이승아 대표에게 와서는 이런 이야기가 들리니 지역민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죠. 돈으로 환산하라는 게 아니라 라이프밸리 같은 후배들을 속초에 많이 만들어 보자고요. 바른 소리도 뒤에서 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누군가를 탓하거나 편드는 게 아니라, 의견을 솔직하게 전달하고 함께 생각을 바꿔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쓴소리를 하면서 어긋나는 부분을 해결해 나가고 있습니다.
진정한 동료가 되던 날
2022년 10월 28일, 라이프밸리 행사에서 속초 문화예술인 원로들 15명과 런웨이를 한 날이에요. 이 대표에게 바닷가에서 레드카펫을 같이 걸을 분들을 모아줄 수 있냐는 부탁을 받았어요. 전화를 돌려 선후배 15명 정도를 모았죠. 그 전까지는 초대손님이나 멘토 정도의 위치에 그치곤 했는데, 그 날은 청년들과 함께 놀았어요. 같이 바다를 걷고, 문제가 생기면 같이 해결하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다보니 진짜 하나가 됐어요. 멘토와 멘티가 아닌 같이 협력하는 코-워크, 동료였죠. 그 날 이후로 라이프밸리를 바라보는 문화예술인 원로들의 시선이 바뀌었고, 연식 따지지 말고 함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분위기가 생겼어요. 함께 나아가는 동료가 된 바닷가에서의 하루가 우리의 로컬기념일입니다.
우리가 만들어 갈 서사
제가 후배들에게 늘 얘기하는 게 있어요. 속초는 보여주지 못한 속살이 많은 도시인데, 그걸 보여주기 위해서는 속초의 서사에 대해 잘 알아야한다고요. 획기적인 아이템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것이 속초와 맞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니까요. 오래 이곳에 머물기 위해서는 여기서 통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게 중요하죠. 아이디어는 저보다 청년들이 훨씬 반짝일테니 걱정하지 않아요. 그것들을 정말 반짝이게 하기 위해서는 속초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늘 강조해요. 하지만 지역을 알아가는 데에는 제가 도움을 줄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네요. 우리 청년들, 그리고 라이프밸리는 잘 해내리라고 믿습니다.
로컬기념일|<로컬라이프클럽 begins> 캠페인의 일환으로 마을 청년들이 우연과 인연을 계기로 로컬을 보금자리로 정하고 새로운 시작을 결심한 날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행정안전부 청년마을만들기 지원사업 선정 마을에서 추천한 인물의 인터뷰가 담겨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