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DOGO온천의 강유정 님은 로컬 콘텐츠판이 조금 더 건강해지길 바라며
제로웨이스트와 지속가능함을 지향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합니다.
나의 첫 독립
아산 도고면으로 전입신고를 마친 2022년 10월 1일이에요. 부모님과 살다가 처음 독립한 날이라서 제 인생의 전환점이기도 해요. 처음 도고에 간 건 일 때문이었는데, 골목골목이 너무 예뻤어요. 그때부터 지역이 마음에 들어왔던 것 같아요. 그러다 친구들이 도고에서 청년마을을 해보자고 하는 거예요. 도고에 가면 강아지들과 함께 마당 있는 시골집에서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가야겠다고 결심했죠. 이사하는 날 느꼈던 감정은 시원섭섭함? 오래 살아온 동네를 떠나게 된 거라 서운하면서도 새로운 날들이 기대돼서 설레었어요.
달라진 일상
일과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가장 크게 바뀐 건 출근 시간? 그전에는 아침잠도 많은데 일찍 출근해야 하니 스트레스로 아침을 시작하곤 했어요. 이제는 걸어서 출퇴근이 가능하니 아침의 마음가짐이 완전히 달라졌죠. 마음이 여유로우니 일어나면 도더지굴(도고온천의 공유오피스) 앞 텃밭에 가서 잡초를 뽑고, 동네 어르신들께 인사도 드리면서 하루를 시작해요. 시간을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일을 하는 방식도 바뀌었어요. 편안한 시간대에 유동적으로 일하고, 사무실과 집이 가까우니 밥을 먹고 잠시 집에 가서 낮잠을 잘 수도 있어요. 몸과 마음에 저절로 여유가 생겼어요.
느리게 살아야 보이는 것
저희 마을에 오면 노을은 꼭 보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도고는 높은 건물이 없어서 노을이 동네 어딜 가든 다 보이거든요. 노을을 추천하는 건 예쁘기 때문도 있지만 사실 하늘을 볼 수 있을 만큼의 '마음의 여유'를 가지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커요. 프로그램 중에 동네를 둘러볼 시간을 가지면,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노을, 들꽃을 봤다는 이야기를 하세요. 노을도, 길에 핀 들꽃도 여유를 가지고 느리게 걸어야 보이는 것들이잖아요. 제로웨이스트도 그래요. 여유를 가지고 있어야 가능하죠. ‘빨리빨리’살면 마음이 급해져 자꾸 일회용품, 배달용기를 사용하게 돼요. 마을에 오신 분들이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느리게 걸어야 보이는 것들을 경험하고 가시길 바라요.
불편함을 감내하기
우리는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어요. 냅킨 대신 다회용 소창 손수건을 비치하고, 일회용품 빨대도 없애는 방향으로 가려고 해요. 카페를 통해 제로웨이스트를 경험한 사람들이 늘어나길 바라요. 일종의 불편함을 감내하는 경험이죠. '제로웨이스트'가 낯선 개념이다 보니 관련된 무언가를 할 때마다 길게 설명도 하고 양해도 구해야 하는데요, 일회용품을 안 쓴다는 건 조금 불편하지만 한번 해보면 두 번째부터는 훨씬 수월해요. 요즘 유행하는 챌린지를 한다고 생각해도 좋아요. '빨대 없이 음료 마시기 챌린지' 같은 거죠. '제로웨이스트' 라는 가치를 사람들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요. 그날이 올 때까지 저는 열심히 설명하고, 할 수 있는 걸 하려고요.
하루하루 잘 지내기 게임
여기서는 일단 눈이 마주치면 주민분께서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세요. 저는 내향적이고 먼저 다가가는 성격이 아니라서 되게 새로워요. 인사를 받을 때마다 마을 주민들이 게임 속 NPC 같다고 느껴요. 늘 그 자리에 존재하면서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어, 왔어?"하고 인사를 건네시거든요. 제 이름은 모르셔도 '개 끌고 다니는 청년'이라며 기억해 주시고, 말 몇 번 주고받으면 갑자기 이것저것 챙겨주세요. 한 번은 상추를 막 밭에서 뽑으시더니 가져가라고 주시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퀘스트를 깬 느낌을 받아요. 마을 주민과 친해지기 퀘스트, 이런 거? (웃음) 그런 경험을 통해 그날그날의 마음에 집중하고, 현재를 즐기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어요. 전 환경 관련 일을 하다 보니까 기후위기 우울증이 오거나 동물복지 관련해서 힘든 뉴스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안좋을 때가 많은데, 잘 살아가기 위해 제가 찾은 나름의 방법이에요.
텃밭과 채식
여기에 와서 텃밭을 시작했어요. 가지, 토마토, 비트, 수세미... 다양한 품종을 조금씩 심었어요. 얼마 전에는 가지와 감자를 수확했어요. 가지튀김과 감자스프 브런치까지 해먹었는데 정말 보람차고 맛있었어요. 수확의 기쁨이 이런거구나 느껴요. 제로웨이스트, 환경에 관심을 가지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채식'이잖아요. 실제로 비건인 참가자 분이 계셨는데, 텃밭에서 비트를 뽑아서 알차게 요리하고 가셨어요. 텃밭을 잘 가꾸니까 참여자들이 자급자족의 경험도 느끼고, 채식인들은 기본권을 지키면서 마을 프로그램에 걱정 없이 함께할 수 있게 되니 좋더라고요. 텃밭이 어쩌면 우리 마을이 다양성을 확보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수집광
원래 저는 맥시멀리스트였어요. 다양한 분야의 물건을 수집하는 수집광이었죠. 그러던 중 한 기사를 보게 되었는데, 컬렉터들이 지구를 망친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때부터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방 가득했던 물건들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갈 수 있도록 중고로 정리했고, 지금은 가지고 있는 물건을 최대한 버리지 않고 오래 사용하려고 노력해요. 제 애착 티셔츠는 사촌 언니가 입던 것을 물려받아 거의 20년째 입고 있는 옷이에요. 다들 이 정도면 됐다고 그만 버리라고 하지만, 저는 너무 좋아하는 옷이라 해질 때까지 입다가 정말 버릴 때가 되면 타피스트리로 만들어서 벽에 걸어둘 생각이에요.
건강하게 오래
제로웨이스트를 추구하다 보면 행사 하나를 하더라도 이런저런 고민이 생겨요. 단체티나 현수막 등... 우리가 하는 일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계속해서 질문하고 고민하게 돼요. 그래서 같이 고민할 수 있는 동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함께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이 고민을 더 오래 건강하게 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환경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데, 나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느낄 때 굉장한 위안을 받아요. 존재 자체가 위안이 되는 거죠. 로컬 콘텐츠판에서 지속가능함을 추구하는 모두를 기다리고 있어요. 반대로 로컬의 제로웨이스트가 도시에 진출하는 날까지!
로컬기념일|<로컬라이프클럽 begins> 캠페인의 일환으로 마을 청년들이 우연과 인연을 계기로 로컬을 보금자리로 정하고 새로운 시작을 결심한 날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행정안전부 청년마을만들기 지원사업 선정 마을에서 추천한 인물의 인터뷰가 담겨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