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역에 소중한 존재들이 늘고 있어요
2023.03.31
매거진

고령 뮤즈타운 한수진 님은 지역의 문화와 청년을 연결하며 

마을 회계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괜찮을까?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일했어요. 자신의 진로를 깊이 고민하고 꿈이 많은 대학생들을 보니까 덩달아 저도 고민이 되더라고요. 내 꿈은 무엇일까?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 그러던 중에 고령에 오게 되었어요. 시골에 있는 폐교를 발견했는데 자연경관이 너무 예쁜 거예요. 허리까지 오는 갈대를 지나 랜턴을 켜고 앉았는데,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반딧불이 수십 마리가 눈 앞에 보였어요. 그때 "여기라면 내가 새롭게 도전해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고령에 오게 되었습니다.

 

 

로마에선 로마법을

 

폐교에서 카페 사업을 시작하면서 고령에 막 들어왔을 때였어요. 우유를 사려고 마트에 갔는데 사장님이 저한테 팔 수가 없다는 거예요. 여기는 사는 사람이 정해져 있고 그만큼만 물건이 들어오기 때문에 저한테 팔면 원래 고객인 할머니가 못 드신다는 게 이유였어요. 그때 조금 충격을 받았어요. 고령에 오기 전에는  "시골도 사람 사는 곳인데 똑같겠지."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는 걸 깨달았죠. 여기만의 룰이 있었고, 사람들에게 주민으로 인정받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어요. 어르신들에게 식사 대접도 하고, 손주들에게 그림편지 쓰는 수업, 화분 만들기 수업을 진행하면서 다가가려고 애썼죠. 이제는 먼저 반겨주세요. 요즘은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마! 이거 먹고 가라

 

경상도 사투리가 억양이 세다 보니 다른 지역에서 오신 분들이 들었을 때 "싸우는 거 아닌가?"라고 느낄 수도 있어요. 말투는 그렇지만 친해지고 나면 엄청 챙겨주세요. "마! 이리 와서 이거 먹고 가라!" 하시면서요.(웃음) 말투는 투박하지만 마을에 갈 때마다 “며느리 왔냐”, “손주 왔냐” 하면서 인사도 건네주세요. 친해질수록 속정도 깊고 진국이세요. 볼수록 매력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역에 녹아드는 과정은 힘들 수 있겠지만, 그만큼 웃을 일도 많이 생기는 곳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일과 일상의 경계

 

고령에 오기 전에는 일할 때의 한수진과 퇴근 후의 한수진이 확실히 구분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여기에 정착하고 나서는 그 경계가 모호해졌어요. 함께 일하는 로컬 친구들을 퇴근 후에도 만나면서 일과 일상이 이어지는 생활을 하고 있어요. 그렇다 보니 제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일에 영향을 미치기도 해요. 평소에 사람들이랑 잘 지내야 일도 잘 풀리죠. 저는 원래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새침한 도시 여자였는데(웃음) 고령에 오고 나서는 사람들에게 잘 다가가는 사람이 되었어요.

 

 

나의 두 번째 삶

 

로컬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은 아마 공감하실 것 같아요. 처음엔 희망을 안고 들어오지만 지낼수록 내가 경쟁력을 잃어가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돼요. 고령이 좋아서 들어왔는데 희로애락을 다 느끼면서 지쳐갔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제는 고령을 떠나야겠다 생각했죠. 내 한계는 여기구나. 도시로 다시 나가겠다고 다짐했는데 그때 저희 대표님이 같이 청년마을에 도전해보자고 했어요.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남아있구나.’, ‘고령이 날 찾아주는 구나.’라고 느꼈고 다시 남기로 마음먹었어요. 결정하자마자 며칠 만에 회사가 설립 되었는데, 그 날이 2022년 2월 7일이에요. 제 두 번째 삶이 시작된 순간을 로컬기념일로 정했습니다.


 

뮤즈타운

 

고령을 ‘음악의 도시’로 알리고 싶어요. 가야금을 최초로 연주한 도시인데 음악 쪽으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요. 이런 지역자원과 청년들의 문화를 합쳐 ‘힙한’ 고령을 만들고 싶어요. 가야금 연주자들이 EDM과 함께 공연을 해보고 싶다는 의견을 줘서 음악인을 모집하기도 했어요. 지난 8월에 열린 발대식에서 음악의 도시로서의 고령에 대한 확신을 얻었어요. 밴드와 앞으로 함께하게 될 뮤지션들을 초청해서 공연을 선보였는데, 반응이 좋았거든요. 고령은 행사가 있다면 99.9퍼센트로 트로트가 나오는 곳인데, 마을 주민 분들도 이런 새로운 공연이 앞으로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응원해 주셨어요. 청년들이 고령에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영감을 나누고, 서로의 뮤즈가 되는 청년마을을 만들고 싶어요. 

 

 

소중한 존재들

 

저희끼리 밈*처럼 쓰는 말이 있는데, "바다도 이렇게 달라지는데 ㅇㅇ은 언제 커?" 예요. 바다는 고령에 들어와서 생긴 제 소중한 반려견인데, 처음엔 '기다려'도 못했어요. 늘 말썽쟁이였는데 많이 성장했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과연 내가 청년마을을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일까? 나는 더 성장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제 옆에 있는 바다와 같이 성장하면서 마을에 스며들고 있어요. 함께 발전하고 있는 거죠. 

 

또 다른 소중한 존재는 지역에 있는 청년들이에요. 청년마을 선정 전부터 지금까지 저희 팀원들이 어려움에 부딪치면 도움이 필요하냐고 먼저 물어봐 줘요. 문제가 생기면 나서서 해결해주려 하고 자기 일처럼 여기면서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존재들이 있어서 참 든든해요. 너무 감사하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웃음) 

*밈 : 인터넷을 통해 대개 모방 형태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파되는 생각, 스타일, 행동을 말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른이 된다는 건 슬플 때도 기쁠 때도 내가 맡은 바를 해내는 거라고 요즘 많이 느끼고 있어요. 로컬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게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알고, 앞으로도 더 고생하겠지만 이 또한 지나가겠죠? 고령은 어르신이 많은 지역에 있다 보니 활동하면서 뵐 일이 많은데, 마주칠 때마다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세요. 손주들도 대도시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데, 청년들이 와서 활동해 주니 너무 좋다고 눈물을 보이셨던 할머니가 기억에 남아요. 그분들에게는 여기가 고향이잖아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고령이 제2의 고향 같고, 많은 보람을 느껴요. 내가 맡은 바를 잘 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고령에 좋은 영향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게 되는 순간들이에요.

 

 


로컬기념일|<로컬라이프클럽 begins> 캠페인의 일환으로 마을 청년들이 우연과 인연을 계기로 로컬을 보금자리로 정하고 새로운 시작을 결심한 날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행정안전부 청년마을만들기 지원사업 선정 마을에서 추천한 인물의 인터뷰가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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